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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트래킹 갈래? 어디든 가고 싶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혼자가긴 심심해서.

 

"그래, 가자."

 

 

1장  : 그래도 신이 난 마음

그러고 보니 아무 생각이 없던 것만은 확실하다.

한국에서의 첫 배낭여행인데 전혀 첫 여행이라는 흥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다. 왠지 감정이 격양된 상태면 실수를 범할까 두려워서였다.

 

정동진에 도착했다이제부터 노숙이라는 현실에 산이고 뭐고 바다나 보고 맛있는 거나 먹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시작이 순조롭군

새벽에 도착한 정동진은 캄캄했다. 텐트를 치지 않고 침낭만 꺼내어 잠이 들었다나의 고질병 중 하나는 몸을 생각해서 조금은 귀찮더라도 텐트를 쳐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귀찮아서 많은 행동을 생략한다.

 

금진항 바다의 깨끗함에 놀랐다. 탁 트인 수평선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왜 여태껏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지 못 했었는지 편견이 또 한 번 벗겨졌다. 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있었고 마침 고기를 낚는 모습을 보았다. 자리로 돌아오는 낚시꾼을 보다가 잡힌 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 안녕

고기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였다.

 

무작정 걷고 보는 성격에 산 입구를 놓쳤다

혼자 걷고 있지 않은데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을까.

조금만 천천히 갔더라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삶에서도 이렇게 빠르게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2장 : 오르막길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랐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다 보면 정상이 나오겠지 싶었다. 앞에 가는 동생은 힘들었는지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하며 제일 높은 곳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지도를 보고 지금 위치를 내게 알려주었다. 예전의 내가 생각이 났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산을 올랐었다. 다리가 아팠고, 정신은 없었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 숨을 고를 때면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지만 즐기지 못한 후회가 들었다. 공허함. 힘든 오르막을 즐기며 걸을 수는 없는 걸까.

 

인생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고 한다. 올라오는 길이 그렇게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내리막을 내려갈 땐 그저 편하고 즐겁다.

 

나는 내 삶 어디쯤 일까.

 

3장 : 그래도 예쁜데

산길에는 쓰레기가 거의 없었다. 도로와 가까워지자 많아졌다. 내가 주울 수 있는 만큼을 주웠다. 안타까웠다. 산에는 귤껍질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다던데 심심치 않게 저 멀리 휴지도 많이 보았다. 정말 사람들은 귤껍질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할까. 아닌데.

 

그만둘까. 걷고 싶지 않았다. 산은 생각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사방이 낙엽에 색은 갈색이었다. 봄이나 아예 눈 덮인 산이라면 예쁘기라도 할 텐데. 봄을 맞이하는 산속 나무의 모습은 어두웠다.

 

해외에선 더 열심히 보려고 했다. 지나가는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었다. 우리나라여서 이미 알고 있다 착각했는지 나는 새롭게 무언가를 보려 하지 않았다.

 

눈을 더 크게 떠야 하나봐.

 

 

4장 : 따뜻한 마음

여기에 작은 휴게소가 있다. 밤재휴게소.

귀가 잘 안 들리시는 할아버지께 손짓, 발짓으로 하는 설명이 통하지 않자 핸드폰으로 적었다.

 

오늘 잘 곳이 필요한데 여기 옥상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만 자도 될까요?’

 

앞에 안 쓰시는 건물을 내어주셔서 바람을 피해 온돌에서 잘 수 있었다. 물도 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걱정되셨는지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물어보셨다. 노부부의 따뜻함에 감사했다.

자신의 공간은 모르는 이에게 선뜻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다. 나도 저런 마음을 가진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상상했다.

 

다음 날 떠나는 길에 보답으로 우리의 얼굴을 그리고 그 뒤엔 편지를 썼다.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문 앞에서 서 계속해서 바라보셨다. 두 분의 마음이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마음으로 말했다. 감사하다고.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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